기간   2026. 10. 24. - 25. (토-일)   ㅣ   시간   11:00 - 18:00   ㅣ   장소   경기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파주이이유적)          

기간   2026. 10. 24.(토) - 25.(일)   ㅣ   시간   11:00 - 17:00   ㅣ   장소   경기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파주이이유적)          

전문가의 시선 3편

개혁가 율곡과 그를 품은 파주

전문가의 시선 3편

개혁가 율곡과 그를 품은 파주

아침 내내 밥상을 차려도 조금도 배부르지 않는 것처럼 공허한 말만 있을 뿐 실질이 없다면 어찌 일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저 경연의 자리와 상소하는 글에 나라를 다스릴 만한 좋은 지략과 곧은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단 하나의 폐단도 개혁되지 않고 단 하나의 정책도 시행되는 것을 볼 수 없으니 이것은 실질적인 효과에 힘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혼자 있거나 어두운 곳에 숨어 있을 때에도 삼가고 두려워하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남들이 보지 않고 듣지 않을 때에도 경계하고 조심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 율곡 이이의 《동호문답(東湖問答)》 중

율곡 이이는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이자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탁월한 개혁가이다.

젊은 시절 그를 만난 퇴계 이황은 남들이 수년에 걸쳐 깨달을 것을 며칠 만에 이해하는 탁월한 능력에 감복했기에 정치가의 길 보다는 학자의 길을 권고하였다. 

실제로 그는 퇴계 이황과 더불어 조선 유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학자로 현재까지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수양한 학문을 정신적 가치로만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치 있는 도구로 만들고자 하였다. 

율곡이 활동하던 때는 조선 중기 선조가 통치하던 때이다. 선조는 한명회 이래 지속되었던 권력형 간신의 시대를 끝내고 사림파와 함께 국가를 운영하는 새로운 정치 풍토를 이루어냈다. 선조의 시대에 기회를 맞이한 율곡은 정철, 성혼, 유성룡 등 당대 최고의 유학자들과 함께 개혁 정치를 펼치기 위해 노력하였다.

앞선 글에서 살펴보았듯 그는 ‘실질(實質)’을 강조하던 인물이었다. ‘좋은 지략과 곧은 논의’는 정책으로 구현이 되어 폐단을 개혁하는데 이르러야 하고 마땅히 백성의 삶이 지금보다 좋아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는 ‘선을 좋아하여야 반드시 선을 얻고, 악취를 싫어하듯이 악을 미워하여야 결단코 악을 제거’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삶을, 사회적으로는 탁월한 삶을 지향하였다.

또한 공무를 보지 않고 은거할 때는 소박한 삶을 살았는데 직접 호미나 농기구를 제조해서 판매할 정도로 민중과 가까운 삶을 누리기도 하였다. 안타깝게도 그의 뜨거운 열정은 적당주의로 일관했던 선조에 의해서 상당 부분 좌절되고 말았다. 하지만 도덕적인 삶, 깊은 학문적 의지 그리고 민중과 함께하는 개혁적인 삶은 조선 왕조를 넘어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파주는 율곡 이이가 자란 곳이고 말년을 보낸 곳이다. 

파주는 개성과 한양을 잇는 곳으로 삼국 시대부터 고려·조선까지 한반도 역사의 중요한 유산을 품고 있는 곳이다. 이곳을 거쳐 중국의 사신과 문물이 한양으로 흘러 들어왔고 또한 한양에서의 중요한 결정이 이곳을 거쳐 개성과 평양 및 전국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아마도 그러한 시대적 예민함을 담지한 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섬세한 시대 정신을 길렀는지 모른다. 오늘날 파주는 분단의 현실 가운데 남북을 잇는 여러모로 중요한 곳. 율곡 같은 새로운 인재들이 많이 자라나서 풍요로운 역사의 장면을 이루어 가기를!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앞선 글에서 살펴보았듯 그는 ‘실질(實質)’을 강조하던 인물이었다. ‘좋은 지략과 곧은 논의’는 정책으로 구현이 되어 폐단을 개혁하는데 이르러야 하고 마땅히 백성의 삶이 지금보다 좋아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는 ‘선을 좋아하여야 반드시 선을 얻고, 악취를 싫어하듯이 악을 미워하여야 결단코 악을 제거’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삶을, 사회적으로는 탁월한 삶을 지향하였다.

또한 공무를 보지 않고 은거할 때는 소박한 삶을 살았는데 직접 호미나 농기구를 제조해서 판매할 정도로 민중과 가까운 삶을 누리기도 하였다. 안타깝게도 그의 뜨거운 열정은 적당주의로 일관했던 선조에 의해서 상당 부분 좌절되고 말았다. 하지만 도덕적인 삶, 깊은 학문적 의지 그리고 민중과 함께하는 개혁적인 삶은 조선 왕조를 넘어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파주는 율곡 이이가 자란 곳이고 말년을 보낸 곳이다. 

파주는 개성과 한양을 잇는 곳으로 삼국 시대부터 고려·조선까지 한반도 역사의 중요한 유산을 품고 있는 곳이다. 이곳을 거쳐 중국의 사신과 문물이 한양으로 흘러 들어왔고 또한 한양에서의 중요한 결정이 이곳을 거쳐 개성과 평양 및 전국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아마도 그러한 시대적 예민함을 담지한 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섬세한 시대 정신을 길렀는지 모른다. 오늘날 파주는 분단의 현실 가운데 남북을 잇는 여러모로 중요한 곳. 율곡 같은 새로운 인재들이 많이 자라나서 풍요로운 역사의 장면을 이루어 가기를!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EVENT] <율곡을 맞혀라> 주간 퀴즈!  

본문을 읽은 율곡서재 방문자라면 누구나 맞힐 수 있는 초간단 퀴즈!

아래 [퀴즈 응모하기] 링크를 클릭해 정답을 남겨주시면, 추첨을 통해 파주페이 5,000원권을 보내드립니다.

Q. 율곡 이이는 좋은 지략과 논의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져 폐단을 고치고 백성의 삶을 이롭게 하는 ‘이것’을 강조하셨는데요. 공허한 말 대신 실질적인 효과에 힘써야 한다는 율곡 선생의 지론이었던 ‘이것’은 무엇일까요? 

- 힌트: 본문 세 번째 문단 속 '실O' 두 글자를 찾아보세요!

- 참여기간: 8. 31(월) ~ 9. 6(일) *9월 1주차

- 당첨인원: 6명 ※ 당첨 다음달에 지급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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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율곡 이이는 좋은 지략과 논의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져 폐단을 고치고 백성의 삶을 이롭게 하는 ‘이것’을 강조하셨는데요. 공허한 말 대신 실질적인 효과에 힘써야 한다는 율곡 선생의 지론이었던 ‘이것’은 무엇일까요?

- 힌트: 본문 세 번째 문단 속 '실O' 두 글자를 찾아보세요!

- 참여기간: 8. 31(월) ~ 9. 6(일) *9월 1주차

- 당첨인원: 6명 

   ※ 당첨 다음달에 지급 예정입니다.

2026 율곡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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