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2026. 10. 24. - 25. (토-일)   ㅣ   시간   11:00 - 18:00   ㅣ   장소   경기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파주이이유적)          

기간   2026. 10. 24.(토) - 25.(일)   ㅣ   시간   11:00 - 17:00   ㅣ   장소   경기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파주이이유적)          

율곡의 삶 3편

시대를 바꾼 실천가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외면하지 않고, 조선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개혁을 논했던 율곡 이이.

그는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마주했던 위대한 실천가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을 사랑했던 율곡의 뜨거웠던 삶의 후반기, 그 궤적을 따라가보세요.

미래를 내다본 혜안, '십만양병설'

당시 조선은 변방의 국지전 시각에만 갇혀 정작 나라의 운명이 걸린 전면전 대비에는 대단히 안일했습니다. 오랜 평화에 취해 국방이 매우 취약해진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율곡은 다가올 국제 정세의 변화를 날카롭게 예견했습니다.

그는 국방력 강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3년간 변방에서 군 복무를 마치면 신분 제한을 풀어 서자들도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자(서얼 허통)고 제안했습니다.

율곡 이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화 중 하나는 바로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입니다. 그는 격렬한 비판과 정치적 고립을 각오하고 선조 임금에게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으니, 미리 10만의 군사를 길러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이민족의 침략에 대비해야 합니다." 라며 간곡하게 상소를 올렸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절박한 외침은 조정의 반대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지만, 훗날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국난을 마주하며 율곡의 혜안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백성을 구한 현실적인 아이디어, '대동법'의 싹을 틔우다

율곡의 실천 정신은 국방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백성들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지역 특산물을 세금으로 바치는 공납 제도였습니다.

중간 관리들의 횡포로 백성들이 고통받자, 율곡은 "백성들이 구하기 힘든 특산물 대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쌀'로 세금을 내게 하자" 는 파격적인 제안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대공수미법(代貢收米法)으로 훗날 조선 최고의 대중 민생 개혁이라고 불리는 '대동법(大同法)'의 중요한 모태가 됩니다.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그의 고민이 현실적인 정책으로 연결된 순간이었습니다.

미래를 내다본 혜안, '십만양병설'

당시 조선은 변방의 국지전 시각에만 갇혀 정작 나라의 운명이 걸린 전면전 대비에는 대단히 안일했습니다.

하지만 율곡은 다가올 국제 정세의 변화를 날카롭게 예견했습니다. 그는 국방력 강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3년간 변방에서 군 복무를 마치면 신분 제한을 풀어 서자들도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자(서얼 허통)고 제안했습니다.

율곡 이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화 중 하나는 바로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입니다. 그는 격렬한 비판과 정치적 고립을 각오하고 선조 임금에게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으니, 미리 10만의 군사를 길러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이민족의 침략에 대비해야 합니다"라며 간곡하게 상소를 올렸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절박한 외침은 조정의 반대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지만, 훗날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국난을 마주하며 율곡의 혜안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백성을 구한 현실적 아이디어,

'대동법'의 싹을 틔우다

율곡의 실천 정신은 국방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백성들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지역 특산물을 세금으로 바치는 공납 제도였습니다.

중간 관리들의 횡포로 백성들이 고통받자, 율곡은 "백성들이 구하기 힘든 특산물 대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쌀'로 세금을 내게 하자" 는 파격적인 제안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대공수미법(代貢收米法)으로 훗날 조선 최고의 대중 민생 개혁이라고 불리는 '대동법(大同法)'의 중요한 모태가 됩니다.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그의 고민이 현실적인 정책으로 연결된 순간이었습니다.

파주 자운서원에 깃든 마지막 발자취

조선의 개혁과 민생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위대한 실천가 율곡 이이. 치열한 조정 생활 속에서도 그의 마음이 향한 곳은 언제나 마음의 고향인 파주였습니다. 그는 관직을 물러날 때마다 파주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학문을 정리하고 후학을 길러내며 시대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1584년, 49세의 나이로 서울 거처에서 직무를 다하다 생을 마감한 율곡은, 사후 그의 가문과 학문의 깊은 뿌리가 남아 있는 파주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발인하는 날 밤에는 멀고 가까운 곳에서 사람들이 집결하여 그의 마지막을 전송하였는데, 횃불이 하늘을 밝혀 수십 리에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파주 자운서원과 자운산 기슭의 묘소는, 율곡의 정신이 오늘날까지 파주 지역에 깃들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파주 자운서원에 깃든 마지막 발자취

조선의 개혁과 민생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위대한 실천가 율곡 이이.

치열한 조정 생활 속에서도 그의 마음이 향한 곳은 언제나 마음의 고향인 파주였습니다. 그는 관직을 물러날 때마다 파주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학문을 정리하고 후학을 길러내며 시대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1584년, 49세의 나이로 서울 거처에서 직무를 다하다 생을 마감한 율곡은, 사후 그의 가문과 학문의 깊은 뿌리가 남아 있는 파주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발인하는 날 밤에는 멀고 가까운 곳에서 사람들이 집결하여 그의 마지막을 전송하였는데, 횃불이 하늘을 밝혀 수십 리에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파주 자운서원과 자운산 기슭의 묘소는, 율곡의 정신이 오늘날까지 파주 지역에 깃들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 감수 | 파주학연구소 차문성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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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읽은 율곡서재 방문자라면 누구나 맞힐 수 있는 초간단 퀴즈!

아래 [퀴즈 응모하기] 링크를 클릭해 정답을 남겨주시면, 추첨을 통해 파주페이 5,000원권을 보내드립니다.

Q. 율곡 이이가 다가올 국난을 예견하고, 선조 임금에게 미리 10만의 군사를 길러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국방 개혁안은 무엇일까요?

- 힌트: 본문 첫 번째 문단(미래를 내다본 혜안…) 속에서 정답을 찾아보세요!

- 참여기간: 7. 20(월) ~ 7. 26(일) *7월 4주차

- 당첨인원: 4명 ※ 당첨 다음달에 지급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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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힌트: 본문 첫 번째 문단(미래를 내다본 혜안...) 속에서 정답을 찾아보세요!

- 참여기간: 7. 20(월)~7. 26(일) *7월 4주차

- 당첨인원: 4명 ※ 당첨 다음달에 지급 예정입니다. 

2026 율곡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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